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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왜장들에 대한 짧은 잡담-모리 데루모토 역사/뉴스/딴지

-1553년생, 임란 당시 일본 5대로중 1인으로, 책략가로 유명한 모리 모토나리의 손자입니다. 게다가 두 삼촌이 용장 킷가와 모토하루, 지장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당시 모리가는 100만석이 넘는 대국, 부족할게 없는 도련님이었지요. 그 좋은 환경덕분인지 꽤나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자라지만 나름 제멋대로인 성격때문에 할아버지인 모토나리에게 혼났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때는 경상도 일대에서 웅거하고 있었습니다. 후의 히데요시의 코베기명령때 "불쌍하게 죽일수야 있느냐. 그냥 코만 베라."라는 유명한 명령을 내립니다-_-;; 아무튼 이일이후로 경상도에 코나 귀가 없는 조선인이 많이 생겼다고 하지요.

그러고보니 이사람이 데리고온 7군이 9군까지의 편제중에서 최대수더군요. 3만....

정기룡장군이 왜란 초기에 게릴라전을 벌였던 상대도 바로 모리 데루모토의 부대입니다.

- 정유재란때는 양자인 모리 히데모토를 출정시켰습니다.

-임란후 세키가하라전투에서는 자신은 오사카성에 주둔한채로 모리 히데모토, 킷가와 히로이에, 안코쿠지 에케이등에게 군사를 주어 이에야스와 싸우러 가게 시켰습니다.  특유의 우유부단이 점철된 이 결정이 화근이 되어 킷가와 히로이에가 세카가하라에서 모리 히데모토의 길을 막고 이에야스를 공격하지 못하게 했지요.

모리 히데모토의 3만군세가 이에야스를 공격하지 않는 사이에, 배반한 고바야가와 히데아키때문에 서군은 괴멸, 모리군도 철수 합니다. 킷가와 히로이에는 이를 구실로 모리가의 영지를 온존하려 했으나 이에야스는  히로이에의 영토를 늘려주고 모리가의 영토를 몰수하는(이에야스다운)결정을 내리지요. 킷가와 히로이에가 자신의 영지를 모리 본가에 인도했지만 모리가는 이미 120만석의 대국에서 37만 7천석의 그저그런 나라로 줄어버렸습니다;

--이사람과 딱 매치가 되는 사람을 꼽자면 삼국지의 공손찬이나 원소?? 양가와(킷가와, 고바야가와)가 받쳐주는 모리가문을 37만석의 그저그런 가문으로 몰락시킨 것을 생각하면 진성 먹튀지만, 감봉당한 후에 어수선한 가문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면 나이먹고 철들었구나...라는 말이 나오지요-_-;;

아, 그리고 모리가 몰락의 원인이었던(본인은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 했다지만)킷가와 히로이에는 그후로도 모리가 밑에서 잘 일했습니다; 물론 욕은 장난아니게 먹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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